해외에서 스마트폰을 날치기 당했습니다.
한동안 블로그에 오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왔거든요. 그리고,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했답니다. 특히나 그동안 찍어왔던 사진도 잃고, 사진을 찍어주던 스마트폰을 함께 잃어버렸지요. 그래서 이번 여행 이야기는 사진도 없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스마트폰 하나로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요. 시계 역할에 카메라, 인터넷 검색, 일정 기록, 통역..... 스마트폰을 사용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도 힘들어집니다.
제 여행 과정도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지고 있답니다.
항공권 검색에서 부터 예약, 관광지 검색, 이트래블 카드 작성과 큐알코드 저장, 입국카드 작성 예시 저장하고, 말이 잘 안 통할 때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고 길 찾기를 하거나 교통편을 이용해 이동할 때 구글 지도를 이용하는 등 예전 스마트폰이 없을 때 해외 여행을 어떻게 했었는가 싶을 정도로 지금은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습니다.
그런데 앙헬레스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날치기 당했답니다.
필리핀 특히 앙헬레스의 거리는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이들, 호객하는 이들로 늘 북적거리는 터라 조심하고 다니란 주의도 많이 들었고, 실제로 많이 조심하고 다니는 편입니다. 일행이나 처음 필리핀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조심할 것을 당부하곤 하던 저였는데 그런 일이 생길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늦은 밤 시간, 숙소 근처의 편의점에서 생수와 간식거리를 조금 사서 글어오는 길이었습니다. 숙소 인근은 호객하는 사람이나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비교적 한산한 곳이어서 잠시 긴장이 풀렸던 모양입니다. 오른 손에 간식거리와 생수를 들고, 왼쪽 바지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은채 숙소를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제게 부딪혀 왔습니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고, 금방 이상한 기분에 주머니를 만지니 스마트폰(케이스 안에 신용카드와 돌아와서 사용할 우리나라 돈이 함께 들어있는)이 없었습니다. 돌아보니 작은 체구의 소년이 도로를 가로질러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야!" 소리지르며 쫓아갔습니다. 체구만큼이나 날렵한 녀석입니다. 빠르게 달아나는 녀석을 쫓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어린 아이들부터 청년까지 어느 구석에 있었는지 모를 열댓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 옆에서 나와 함께 녀석을 쫓습니다. 제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고 소리쳤는지 아닌지 기억도 안나는데 옆에서 달리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 Your Cell-Phone?"
"OK."
녀석은 필리핀의 롯데리아 격인 졸리비 건물을 지나 SM 몰 쪽으로 달아납니다. 도로변에 차단막이 있는데도 날렵하게 넘어서 달아납니다. 아무 생각없이 쫓아가지만 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함께 쫓아가는 어린 아이들은 한번에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발빠른 사람들은 벌써 저보다 앞서 녀석을 쫓고 있지만 거리는 좁혀지지 않습니다.
SM 몰과 앙헬레스는 철제 펜스로 차단되어있습니다. SM 몰 방향으로 도망가던 녀석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불빛이 거의 없는 마을 쪽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함께 쫓던 아래 턱에만 수염을 기른 청년이 일행을 가로막습니다. dangerous area이니 더이상 쫓지 못한다, 로컬 지역은 위험하다, 자기들이 얼굴을 보았으니 나타나면 찾아주겠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알아들은 말들입니다. 제 스마트폰 기종을 물어봅니다. 갤럭시 노트20 울트라, 찾으면 숙소로 연락을 주겠다, 경찰에 신고해라 하며 경찰서 위치를 가르쳐 줍니다.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그런데 왜 신고를 했는지 후회가 ......
졸리비 옆 쪽이랍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경찰서 같은 건물이 안 보입니다. 다시 돌아와 졸리비 건물의 가드에게 물어봅니다. (필리핀에서는 건물 앞에 제복을 입고 권총을 찬 가드들이 있습니다. 어지간한 건물에는 다 있습니다. 사설 경비원 같은 사람들이랍니다.) 다시 그 쪽을 가리킵니다. 가 보니 흐릿한 조명에 폐차된 차가 하나 서있고, 전혀 공공기관 같은 느낌을 찾을 수 없는 곳인데다 간판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우리나라 지구대 같은 곳이랍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잘 안되는 영어로 스마트폰을 빼앗겼다 얘기하니 뭐라고 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PC 어쩌고 하며 따라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가니 PC 앞에 앉혀줍니다. 분실폰 찾기 기능을 이용하라는 것 같습니다.
설정을 해 두었던가 생각해 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분실폰 찾기 기능 꼭 설정해 두셔야 할 것 같아요. 최악의 경우 폰 초기화도 할 수 있으니 소중한 개인 정보들을 지키기 위해 꼭 해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분실폰 찾기 기능에 대해 포스팅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어 그냥 두었던 것 같기도 하고.....구글로 찾으려고 노력해 봅니다. 핸드폰 번호도 넣어보고, G메일아이디와 비밀 번호도 넣어보고,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못하겠다니 근무자가 상황에 대하여 조사를 합니다. 여러가지를 묻는데 두세마디에 한번씩 알아듣지 못합니다. 필리핀 영어의 특징(검색해보시면 우리가 아는 영어와 필리핀 영어의 다른 점이 많더군요)도 열심히 공부하고 나름 여행영어도 공부하려고 하고 있지만 언어의 벽은 여전히 넘사벽입니다. 근무자가 스마트폰으로 구글 번역기를 실행합니다.
잃어버린 시간, 장소, 잃어버린 물건..... 조사를 받습니다. 한참을 조사한 후에 기다리랍니다. 그동안 일행의 폰을 빌려 잃어버린 카드 분실신고를 합니다. ARS. 할 때마다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 긴 과정을 정신없이 소화해 내고 간신히 분실신고를 마칩니다. 십여분 이상 걸린 듯 싶습니다. 어차피 시대의 흐름이지만 키오스크 있는 식당도 두번 가기는 서먹한 저에게 ARS, 그것도 선택권 없이 보이는 ARS로 전환되는 고객센터 전화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그 때 같이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필리핀 사람들 느긋하더군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순찰차 한대가 들어옵니다. 경관 둘이 내리더니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는 기다리라고..... 한참 후 차에 타라고. 아마도 현장 검증인 듯. 바로 건너편이라고 걸어도 1분도 안되는 거리라고 어필해봤지만 요지부동, 뒷문으로 밀어넣습니다. 차로 가니 막힌 곳을 지나 한참, 걷는 것보다 몇배는 먼 거리입니다.
필리핀 경찰은 대단합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저마다 떠듭니다. 길이 20Cm쯤 되는 나이프가 경관에게 건네집니다. 녀석이 길을 건너면서 버렸다는 것 같습니다. 목격자가 수십명은 넘어보입니다. 저마다 큰 목소리로 경관에게 얘기합니다. 그리고는 녀석이 도망친 장소를 한번 돌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또 기다림. 한참 후에 구글통역과 함께 신고내용을 재확인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변호사사무실의 조력을 받아야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기도 했고, 변호사 조력까지 받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날치기를 당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피로도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 날치기가 제 여행을 거의 올스톱시킬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다음에 스마트폰이 제 여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경찰과 변호사 사무실은 어떤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간과하기 쉬운 여행자 보험은 어떤 혜택을 주었는지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이야기
2023.04.22 - [사는 이야기] - 스마트폰 분실과 함께 멈춰선 여행, 아날로그와 대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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